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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하의 詩心 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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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85
  • 2026.08.30 20:26
 
 
꽃이 피기까지는
 
(하늘시인 이영하)
 
꽃은 피기 전에
얼마나 오래 어둠을 견디는가.
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른 흙의 목을 적시고
작은 눈 하나는
몇 번의 추위를 지나온다.
 
나는 젊은 날
빨리 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세월은
서두르는 마음보다
기다리는 뿌리가 먼저라고 가르쳤다.
 
넘어졌던 날도
돌아가지 못한 길도
어쩌면 꽃이 되기 위한
긴 겨울이었을 것이다.
 
마침내 꽃이 피는 날
사람들은 꽃의 빛깔을 바라보지만
꽃은 말하지 않는다.
자신을 피워 낸 것은
한순간의 햇살이 아니라
견디어 온 어둠이었다고.
 
 
<시작 노트>
꽃은 피는 순간보다 피기 전의 시간이 더 길다.

우리는 흔히 꽃이 피어난 모습을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 있다. 뿌리가 어둠 속에서 물을 찾고, 겨울을 견디고, 작은 눈 하나가 추위를 지나며 봄을 기다리는 시간이 그것이다.
 
사람의 삶도 꽃과 매우 닮았다.

젊은 날에는 빨리 피고 싶어 하고,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서두른다. 그러나 세월을 살아보면 알게 된다. 늦게 피는 것에도 저마다의 계절이 있고, 오래 견딘 시간만이 만들어 내는 빛깔이 있다는 것을.
 
이 시에서는 성공이나 성취를 직접 말하기보다, 꽃이 피기 전의 고요한 시간을 통해 사람의 삶을 바라보고자 노력했다. 마지막에는 꽃보다 오히려 꽃을 피워 낸 보이지 않는 시간이 더 오래 마음에 남도록 하였다.
 
 
 
 
 
쉼과 여유
 
(하늘시인 이영하)
 
나는 너무 오래 앞만 보고 걸었다.
뒤에서 부르는 바람도
곁에 피는 꽃도 몇 번이나 지나쳤다.
 
하늘을 날 때에는
목적지의 좌표가 필요했지만
땅에 내려온 뒤에는
잠시 멈출 자리가 필요했다.
경안천 물소리에 걸음을 늦추고
갈대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바라보며
비로소 알았다.
 
인생은
채우는 일만으로 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빈 찻잔 하나에도
오래 머무는 향기가 있고
말을 아낀 하루에도
사람의 마음은 자란다.
 
이제는 조금 천천히 가려 한다.
늦게 피는 해도 바라보고
먼 사람의 안부도 기다리면서
남은 날의 가장 좋은 속도는
서두르지 않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시작 노트>
사람은 평생 무언가를 향해 달려간다.

젊을 때는 성공을 위해 달리고, 어느 정도 이루고 나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달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달렸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바라보며 잠시 멈출 수 있었느냐는 것을.
 
특히 오랫동안 하늘을 날아온 사람에게 ‘쉼’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비행에서는 한순간의 판단과 긴장이 생명을 좌우하지만, 땅으로 돌아온 뒤의 삶에서는 오히려 멈추어 바라보는 시간이 사람을 깊게 만든다.
 
이 시는 시인이 노년의 한가함을 이야기하는 시가 아니라,오히려 삶을 더 오래 바라보기 위해 필요한 적극적인 쉼에 관한 시다.
 
 
 
 
 
부질없는 것들
 
(하늘시인 이영하)
 
젊은 날에는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면
삶도 오래 남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 앞에서는
직함도 계급도 빛바랜 종이 한 장이 된다.
박수는 멎고
사진 속 얼굴도 조금씩 낯설어진다.
 
가지고 싶었던 것들은
어느 날 손을 펴면 이미 손안에 없다.
끝까지 따라오는 것은
뜻밖에도 작은 것들이다.
 
밥 한 그릇 건네던 손
늦은 밤 기다리던 불빛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 주던 사람
돌아보면 부질없었던 것은
많이 가진 일이 아니라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날들.
 
그래서 이제는
남길 이름보다
건넬 마음 하나를 먼저 생각한다.
 
 
<시작 노트>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얻는다.

이름, 직함, 돈, 명예, 상장, 박수, 사람들의 기억…. 젊을 때는 그것들이 삶의 중요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뒤돌아보면 이상하게도 많은 것들이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빠져나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는가.
 
이 시에서는 “부질없다”는 말을 단순한 허무함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라지는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음으로써 마지막에 정말 버릴 수 없는 하나를 발견하고자 했다. 그것은 거창한 명예가 아니라 한 사람에게 건넨 마음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체념의 시가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는 시가 되도록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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